헌법의 내면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 제헌절이 더 이상 공휴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단지 쉴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제헌절의 상징성, 공휴일의 상징성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입니다.y
헌법의 중요성은 이 자리에서 짧은 몇 마디로 표현하기 힘듭니다.아마 수천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저보다 더 훌륭하신 분들이 여러 곳에서 역설하신 헌법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 것은 고문진보에 패설을 얹는 것과 같을 듯합니다.
대신 저는 헌법이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게 얼마나 내면화되었는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뢰벤슈타인은 헌법규정과 헌법 현실이 일치되느냐에 따라 규범적 헌법, 명목적 헌법, 장식적 헌법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양자가 일치한다면 규범적 헌법이나 간극이 있고 헌법규정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으면 명목적 헌법인 것이죠.그리고 헌법규정이 힘을 잃은 채 권력자의 지배수단으로만 남는다면 그것은 장식적 헌법입니다.
우리 헌법은 8차에 걸쳐 개정되었으며 특히 87년 6월 항쟁 이후 상당히 높은 완성도의 합의를 지닌 헌법입니다.헌법을 무시하는 어떤 높은 분들 덕분에 오히려 헌법의 위상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탄핵심판, 행정수도이전 등 헌법재판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이 과연 우리 사회의 생활규범으로서 사회구성원의 생활을 규제하고 생활 속에서 실현되고 있을까요? 우리에게 헌법은 얼마나 내면화되어 있을까요?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y
제도의 외형만이 이제 틀을 갖추었을 뿐 아직 이들이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소화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헌법규범이 우리의 삶 속에 내면화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지금까지 우리의 헌정사는 헌법규범을 사회에 외적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착오와 갈등이 있었습니다.때문에 우리는 제도를 받아들이는 연습만을 했을 뿐 제도를 문화화하는 연습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과거에는 과거의 사명이 있었듯, 현재는 현재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이제 이들의 외형뿐 아니라 내적인 원리까지 이해하고 수용하는 연습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공휴일이 하루 쉬는 날에 불과하다고 해도, 공휴일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날입니다.국가 공동체가 함께 기억해야 할 날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요.
헌법의 내면화란 우리가 헌법이 우리 사회의 최고규범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인지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헌법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그 내적인 부분까지 되내여야 할 때에 오히려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그 상징성을 망각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어 마음이 아픕니다.
경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0년 00월 00일
발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