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_입신양명 (立身揚名)

“출세하여 자기의 이름을 세상에 드날림”

1920년대 신여성 중 한 명인 김일엽이 22세의 나이로 당시 연희전문 교수였던 40대의 이노익과 결혼한 것도 그의 재정적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의 도움으로 여성의 의식개혁을 촉구하는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는 등 사회적 명성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1920년대 또 한 명의 신여성 김명순 역시 동거하던 화가 김찬영의 주선으로 도쿄 유학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초창기 한국의 선도적 여성들이 입신출세를 하는 데에 연인 또는 남편들의 후원이 전제돼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19년께까지만 해도 상류층에서는 아직까지 내외법을 의식해 딸을 학교에 보내기를 꺼렸기 때문에 초기의 신학문을 배운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평민 또는 한미한 집안 출신 여성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 관문이 워낙 좁았습니다.

그래서 신여성들은 자신과 관계된 남성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복잡한 연애·결혼 관계가 성립하기도 했다는 점 때문에 초기 신여성들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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