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s Off on 퇴임사_대학교수 퇴임식 인사말(감사, 배움)

퇴임사_대학교수 퇴임식 인사말(감사, 배움)

저의 의자를 내어드립니다
부족한 이사람의 마지막 자리에 자리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부터 전하겠습니다.사람의 일생에 남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사람일진대,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제가 교단에 선 30여 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해왔습니다.y
누구는 변절하고, 누구는 또 요절하고.흉흉하고 어지러운 날 많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학생들의 총기어린 눈동자뿐이었습니다.
새삼 돌이켜보면, 제 강의는 졸속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y
고루한 철학을 이야기하고 고전을 이야기하는 제 강의가 폐강되지 않은 것은 학생 여러분의 진지한 고찰과 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y
이제는 관절이 노쇠하여, 오랜 취미인 등산도 잘 못하는 이 노구가 3시간을 쉬는 시간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눈, 저를 더없이 신뢰하는 그 눈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업을 하는 동안에는 저는 그 누구보다 성성한 젊은이일 수 있었지요.y
제 은사님이 해 주신 얘기가 떠오릅니다.
시대 앞에서 철학이 다 무슨 소용이냐, 실상 고상한 탈을 덮어쓴 도피가 아니냐고 따져 묻던 제게
은사님께서는 철학이 없기에 시대가 이 모양이다.불평을 늘어놓을 시간에 시대를 이끌어나갈 철학부터 바로 세워라라고 따끔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y
그 말씀이 있었기에, 암흑과 혼란의 시간 속에서도 저는 한 가지 길로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긴긴 교육의 길 중에 저는 누군가를 바로 세울 한 마디를 줄 수가 있었을까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도리어 제가 많이 배웠지요.
이곳에서 전 젊은이의 열정을 얻고, 가르치는 즐거움을 배웠습니다.y
제 부끄러운 의자를 오늘은 내어드립니다.
교수는 교사와는 또 다른 자리입니다.y
학생들과 날카로운 토론이 가능하고, 벗처럼 어울려 함께 고민하고 함께 더불어 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부디 다음 번 앉을 분께서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베풀고 더 많은 배움을 얻어 가시길 기원합니다.y
이 캠퍼스에서 제가 가장 사랑한 장소는 후문 앞에 늘어선 은행나무 길이었습니다.
유자 빛 나뭇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 이때에
저는 제 삶의 반절을 보냈던 이곳을 떠납니다.
오늘 늙은 저는 떠나지만, 젊은 여러분은 오래 남아 자유로운 정신, 자유로운 심장을 가진 지성인이 되길 바랍니다.y
학생 여러분의 앞날에 밝은 미래가 가득하길 바라며, 이만 기념사를 마치겠습니다.
2000년 00월 00일
대학교 교수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