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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_발표자 이산가족의날 행사 기념인사말

이산가족 상봉, 정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더운 8월의 여름 날씨가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습니다.
8월에는 여러 기념일이 있습니다.그 중 가장 가슴 아픈 기념일 중 하나가 이산가족의 날이 아닐까 싶습니다.분단의 역사, 전 세계 유일무이한 분단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만들어진 씻을 수 없는 과오입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동네 슈퍼 갔다가 오후 1시까지 돌아올게.라고 말하고 외출하신 기억이 있습니다.오후 1시가 지났지만, 어머니는 집에 오시지 않았습니다.엄마 어떻게 된 거 아니야?란 두려움에 혼자서 부들부들 떨다가 오후 2시가 돼서야 돌아온 어머니를 붙잡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짧게나마 경험한 이별이었습니다.y
하물며 사방에 미사일과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넋이 나갈 정도로 정신없었을 때 생이별을 경험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우리는 그들을 이산가족이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tv에서 이산가족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분단이 될 줄 몰랐지.이럴 줄 알았으면 헤어질 때 나눴던 그 한 마디라도 적어놨을 텐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이산가족이 되신 할아버지의 말이었습니다.왜 이렇게 가슴이 뭉클하던지요.
당시 할아버지는 남은 가족들을 남쪽으로 데려가려고 했으나 할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을 모셔야 된다는 이유로 어머니께서 고향을 떠날 것을 거절, 다시 혈혈단신 혼자서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53년 7월 27일 휴전협상이 끝났고 남북한은 분단됐고 할아버지는 그 후로 57년간 어머니와 여동생들 소식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이후 할아버지는 2010년에도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신청했지만, 그에게는 상봉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산가족상봉문제는 남북한 정부가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입니다.우리 측 이산가족 통계는 2010년 5월 기준으로 8만 4,133명입니다.그러나 현실적으로 행사를 통해 만나는 인원은 전체 인원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일례로 2009년 행사 때는 이산가족 신청자 각각 100명 내외, 나머지는 신청자와 상봉하는 가족들만이 상봉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한국전쟁이 낳은 수많은 이산가족 중 실제 상봉 명단에 뽑히는 이들은 극소수이기에, 할아버지가 참여하는 황해도 모임 중 이산가족상봉 명단에 뽑힌 사람이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는 현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산가족상봉의 정례화 및 자유왕래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황해도 모임을 비롯하여 아직까지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많은 이 역시 상봉의 기회가 아마 없을지도 모릅니다.하루빨리 이산가족들의 한이 정치, 경제를 넘어 남북 간 도의적으로 해결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2000년 00월 00일
발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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