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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_이산가족의날 행사 발표자 기념인사말

이산가족, 그 슬픔의 역사를 보며
이산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에게 8월 12일은 그리고 6월 25일은 뼈아픈 슬픔이 있는 날입니다.
어느덧 무더운 8월이 되며 8월 12일도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 칠칠치 못한 코흘리개라 매일 콧잔등을 닦아 주었다던 동생이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며 울부짖는 한 노인을 보며 당시 우리 가족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사실 우리 가족에게 이산가족 상봉은 의미가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한데, 우리 가족 또한 이산의 아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할아버지의 친형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당하셨습니다.1945년 해방을 맞아 할아버지는 친형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당시 사할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미국, 영국 함께한 체결한 얄타협약으로 인하여 소련으로 넘어간 상태였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형의 생사도 모른 채 50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990년 당시 tv에서 방영되었던 사할린 재외동포의 가족 찾기 행사를 통해 할아버지는 큰할아버지의 생사를 반백 년 만에 알 수 있었습니다.얼마나 만나고 싶으셨을까요?
그렇게 할아버지와 큰할아버지께서는 50년 만에 극적으로 해후를 하셨습니다.큰할아버지는 이역만리 우크라이나에서 사시고 계셨는데, 해방 이후 무국적자로 살다 우여곡절 끝에 소련 국적을 취득했고 이후 스탈린 강제이주 정책의 일환에 따라 그곳에 정착하셨다고 합니다.y
일주일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큰할아버지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셨는데 너무 늦게 상봉한 것일까, 아니면 이제서야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났기 때문일까, 그렇게 우크라이나로 돌아간 큰할아버지는 정확히 20일이 지나고 운명하셨습니다.그 후 친할아버지도 뒤따라 운명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천국에서 형과 못다 한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어 기쁘다 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릴 적의 경험이라 그런지 현재 큰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습니다.아련한 기억을 떠올릴 뿐입니다.이런 가족의 역사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 찾기 행사를 볼 때마다 그 일이 남 일 같지가 않습니다.
저 역시 일전의 이산가족 상봉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그들이 친지의 생사를 확인하고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지만, 북한과 평화 통일을 이루지 않는 이상 어차피 또다시 기약 없는 헤어짐을 해야만 하는 그들에게 어떻게 보면 이산가족 상봉은 고통의 연장선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재 한국과 북한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뚫려 있지 않습니다.인적 하나 없는 산에도 사람이 자주 왕래하면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듯이 우리는 자주소통하여 먼저 상생의 길을 만들어야만 합니다.상생의 길을 타고 경제적인 통일, 마침내 한민족의 평화 통일을 이룬다면 우리의 슬픔의 역사였던 이산가족 상봉은 이제 종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루빨리 민족의 상처가 치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0년 00월 00일
발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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