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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_주체성에 관련된 선생님 인사말

존재의 조건.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도 하늘이 참 맑고 청명하네요.이렇게 좋은 날씨에 시험공부 하기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닌 줄은 알고 있지만 이제 정말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중간고사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우리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죠?
바로 관심병과 묵언수행인데요, 시험 기간임을 만천하에 알리며 온갖 짜증을 발산해 관심을 받고자 하는 증상과 시험 따위 안중에도 없이 침묵만을 지키며 주변을 멀리하는 묵언수행 증상입니다.
두 가지 모두 시험 결과가 좋지 않을 때를 위한 핑계거리를 포석해 놓는 방법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어른들은 다 알고 있으니 부디 이번만큼은 자제해 주기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조선 시대에 행해졌던 팽행을 알고 있나요?
팽행이란 옛날에 관리들이사기를 치거나 불명예스러운 짓을 저질렀을 때 그 죄질이 높은 경우 곤장을 다 맞고 나서 받았던 일종의 불명예형입니다.
팽행은 종로 네거리 복판에서 치러졌는데, 임시로 만들어둔 높다란 부뚜막에 놓인 커다란 무쇠솥에 사람이 들어가는 형이었습니다.
단순히 솥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쇠솥에 물을 붓고 그 안에 죄인을 집어넣은 후 솥뚜껑을 닫는 것이죠.
그리고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시늉만으로 팽형 집행은 끝났습니다.
비록 아궁이에 불을 붙여 직접 사람의 목숨을 해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팽형을 거치고 나면 죄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되죠.
집행관이 죄인을 꺼내면서 죽은 시늉을 하라고 이르면 죄인은 마지막 대답을 한 뒤 가사(假死) 상태가 됩니다.
즉, 이 죄인은 앞으로 살아 있되 죽은 사람으로 행세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망인(亡人)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죠.
가족들은 그를 상여에 싣고 집으로 가서 장례식을 치르고 이것이 끝나면 그는 산 시체가 되어 격리되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그 누구도 나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는 생지옥이 열리게 되죠.
어떠면 그 모든 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루에 평균 삼만 개의 단어를 이야기하며 이것이 보통 단행본 50페이지 분량에 달한다고 하니, 그 많은 말들을 내뱉는 동안 누구도 나를 상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겠죠?
여러분이 이 교실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는 겁니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사람을 과연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사회적 동물이라는 전제로 보았을 때 이 상태의 인간을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y
그러니 부디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보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기기 바랍니다.부모님 함부로 대하지 말고, 친구 귀한 줄 아는 여러분 되세요.
이상 마칩니다.
2000년 00월 00일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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